[한마당] 푸틴 타임

[한마당] 푸틴 타임

정승훈 논설위원

입력 2024-06-20 00:4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 등에 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지각 대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외교가에서는 그의 지각을 ‘푸틴 타임(Putin time)’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이번에는 푸틴 타임으로 인해 1박2일 북한 국빈방문 일정이 당일치기 일정으로 바뀌었다. 푸틴은 당초 18일 오후 늦게 북한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19일 오전 2시20분이 지나서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영접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벽까지 푸틴을 기다려야 했다.

푸틴이 정상회담에 늦은 사례는 알려진 것만도 꽤 된다. 2003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2012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 2016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2018년 문재인 대통령 등이다. 메르켈 총리와의 회담에는 무려 4시간15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그나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날 때는 불과 14분 늦었는데 그가 태어나기 전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살해당한 할머니를 떠올려 여왕을 우대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푸틴이 늦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선 러시아인의 철저하지 않은 시간 개념 탓으로 설명한다. 긴 겨울과 넓은 땅, 불편한 도로로 인해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예정된 시간에 정확하게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푸틴이 먼저 와 기다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을 보면 이런 관습의 영향이 큰 것 같지는 않다.

2018년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는 푸틴이 예정보다 35분 늦게 도착했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보다도 20분 더 늦게 도착했다. 심리전을 펼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푸틴은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은보다 30분 먼저 도착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재래식 무기 수급이 급했던 푸틴의 환대로 해석한다면 이번에 한참 늦은 푸틴을 기다리며 김정은이 밤잠을 설친 데에는 뭔가 더 급한 사정이 있지 않나 싶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