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돋을새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김찬희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24-06-25 00:39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열고 날씨, 뉴스를 살핀다. 샤워하고 식탁에 앉는다. 지난밤에 쇼핑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한 식재료들은 요리로 변신했다. 옷을 차려입고 신발을 신으면서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엘리베이터가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라디오 앱에서 익숙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오늘 회사에선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릴까.

평범한 출근길 표정에는 많은 기업이, 그들이 공급하는 제품·서비스가 숨쉬고 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기술(IT) 서비스 회사, 샴푸·비누·칫솔·치약, 밀키트, 옷, 신발, 엘리베이터, 무선 이어폰, 일자리…. 우리는 기업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기업이 일상을 점령했다.

인류가 발명한 수많은 것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게 기업이지 않을까. 기업의 시초라고 불리는 ‘소치에타스 푸블리카노룸’은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에서 신생국 로마는 멸망이라는 단어에 내몰렸다. 소규모 국지전으로 힘을 빼면서 물길을 돌리려던 로마 앞에는 국고 고갈, 보급품 부족이라는 난제가 등장했다. 원로원은 시민들에게 의복, 식량, 장비를 군대에 공급하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때 세 개의 소치에타스가 나섰다. ‘병역 면제’ ‘운송 중 화물 분실 시 국가가 보상’이라는 조건을 내건 이들은 상당한 보급품을 조달했고, 전쟁의 판세를 뒤집었다. ‘징세인 조합’으로 통칭할 수 있는 이름처럼 소치에타스는 세금을 거둬들이는 조직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신전·다리·도로 건축을 맡기도 했다. 개인이 보유한 자본, 노동, 기술을 활용해 국가의 행정 기능을 효율적으로 대체한 셈이다.

하지만 기업은 맹목적이기도 하다. ‘이익 추구’라는 목적이 모든 걸 잠식하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잉태한다. 독점과 불공정, 환경오염, 가혹한 구조조정, 노동착취, 소비자 기만이 그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은 지난 11일 하청업체의 노동착취를 방치·조작한 혐의로 디올 이탈리아 지사의 가방 제조업체에 1년간 사법행정관 감독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법원 결정문을 보면 하청업체 4곳은 불법 체류자를 고용해 24시간 휴일 없이 공장을 돌렸다. 열악한 위생 수준이나 근로 조건은 당연했다. 이렇게 생산한 가방의 원가는 53유로(7만8900원)에 불과했는데, 디올이 매장에서 파는 가격은 2600유로(342만원)였다.

숱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노동력·기술을 조직화하고 집중적으로 투입해 성과를 도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조직’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세상을 구축한 것도, 눈부시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한 것도 국가·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지금 기업들이 주도하는 기술의 발전은 미래를 대대적으로 재조립할 태세다. 인간의 노동을 AI·로봇이 대체하는 세상이 오면 문명의 대전환이 불가피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최고의 혁신’인 AI가 ‘최악의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진단했다. 생산성 증대로 기업 수익성은 향상되는데, 노동자 임금은 줄어든다고 봤다. 대규모 실업, 부의 집중도 우려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막대한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 짙은 그림자를 어떤 식으로 막을지 서둘러 고민하고 법·제도를 정비하라는 경고다.

흔하게 얘기하는 기업가 정신에는 ‘혁신’ ‘창조적 파괴’와 함께 ‘사회적 책임 수행’이라는 팔이 하나 더 있다. 영향력이 커진 만큼 기업이 맡아야 할 책임의 영역은 넓어지고 있다. AI를 축으로 하는 산업 변화,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저출생 극복 등에서 공익은 곧 기업의 이익일 수 있다. 기업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릴 것인가.

김찬희 편집국 부국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