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푸틴의 체스판

[특파원 코너] 푸틴의 체스판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4-06-26 00:38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으로 하는 대서양 횡단 동맹과 인도·태평양 동맹을 연결하는 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오랜 구상이었다. 바이든은 취임 첫해인 2021년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중국 활동이 집단 안보에 가하는 장기적인 구조적 도전에 관해 이야기했다”며 “인·태 지역에 존재하는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민주주의 파트너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발언하며 이를 공식화했다. 당시 공동성명에는 “중국의 야망과 독단적인 행동이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와 동맹 안보 영역에 체계적인 도전을 제기한다”고 명시됐다.

중국 견제를 위해 유럽과 인·태를 묶겠다는 바이든 행정부 전략은 이듬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의외의 진전을 봤다. 전쟁 발발 직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계 없는 우호 관계’를 발표했고, 나토는 그해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야망과 강압적인 정책이 우리 이익, 안보, 가치에 도전한다”는 직설적인 새 전략 개념을 채택했다. 나토는 이때 아시아·태평양 파트너국(AP4)인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을 처음으로 동시에 정상회담에 초청하며 인·태와의 밀착을 강화했다. AP4 국가는 지난해에 이어 75주년을 맞는 올해도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유로·대서양과 인도·태평양 안보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 등의 발언을 했다.

유럽은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중국 대응 문제에 있어 꾸준히 이견을 드러내 왔다. 외교안보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는 “헝가리는 중국과 안보 협력과 투자 협력을 심화하고 있고, 독일도 최고 무역 파트너로 중국과 긴밀한 경제 협력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역시 나토가 유럽에만 집중해야 한다면서 도쿄 연락사무소 개설 추진을 강력히 반대해 왔다.

중국은 이 균열을 집요하게 공략해 왔다. 중국으로서는 대서양 횡단 동맹과 인·태 동맹의 연합이 현실화하면 전략 상품의 수출 통로가 막히고, 미국 중심의 동맹이 자국을 에워싸 고립되는 안보 지형이 형성된다. 그래서 시진핑은 대만에 대한 위협을 거듭하면서도 지난해 바이든과 악수하며 화해 제스처를 취했고, 그사이 유럽 국가 문을 두드리며 미국 봉쇄 전략의 구멍을 뚫으려 무던히 애썼다. 중국 국영 신화통신은 지난 4월 “나토가 범위를 넘어서는 불길을 부채질하고 있다. 나토가 가는 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나토의 동진을 경계했다. 푸틴의 최근 북한·베트남 방문은 이런 지정학적 역학을 이용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그는 미·중 간 이분법적 패권 경쟁 구도를 흔들고, 특히 중국에 “편을 분명히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던졌다. 북·러 협력에 대한 지지는 중국을 ‘새로운 악의 축’(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프레임에 몰아넣게 되고, 이는 ‘미국을 견제할 글로벌 강국’이라는 중국의 목표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북한과 베트남에 대한 독점적 영향력을 포기하기도 어렵다. 푸틴은 아시아 활동을 통해 러시아를 신냉전 구도의 주도적 행위자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 상황에서 득을 보게 된 건 북한이다. 왕따 국가에 든든한 뒷배가 마련됐고, ‘깡패 국가 연합’이라는 서클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례 없는 최근의 도발을 미국도 우려스럽게 보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심화할수록 한국은 미국 핵우산과 서방 동맹 연합 의존성을 키울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는 당선되기만 하면 그 값을 철저히 받아낼 태세다.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