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독이 든 사과 ‘여의도 대통령’

[여의춘추] 독이 든 사과 ‘여의도 대통령’

손병호 논설위원

입력 2024-06-28 00:39

이재명 대표 위상 높아졌지만
야당은 국회서 힘자랑만 하고
당내 민주주의도 훼손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계속 커져

제왕적 위상과 권력에 취한
군림은 이 대표 DNA 아닐 것
독선적 정치 중단하지 않으면
대권주자 위상 흔들릴 수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한테 이름 붙여진 ‘여의도 대통령’은 점점 더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명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영수회담 때 이 대표가 일장 연설을 하던 장면에서,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자리를 친명계 후보로 옹립하려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여의도 대통령의 위상을 실감했을 것이다. 또 당원권 강화 당규를 관철하는 것에서, 여당을 배제한 채 국회 법제사법위와 운영위 등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선출하는 것에서, ‘대선 1년 전 당대표직 사퇴’ 당헌을 바꾸는 것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20여년 만에 당대표직 연임을 하려는 모습에서도 여의도 대통령이 연상됐을 것이다. 당원권 강화나 상임위원장 배정이 당대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따질지 모르나 이 대표 편인 당원들의 권한을 강화한 건 결국 이 대표한테 좋은 일이고, ‘국회는 만장일치의 화백제도가 아니다’는 이 대표 지침이 야당 독주의 국회 풍경을 빚어낸 것과 무관치 않다. 그런데 이런 여의도 대통령의 모습은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점점 더 그 위세가 드세지지 않을까.

이 대표는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다. 야권에선 대항마조차도 안 보인다. 그런데다 22대 국회 권력까지 장악했으니 여의도 대통령이란 말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의도 대통령이란 말엔 위상이 커졌다는 긍정적 면 못지않게 독(毒)도 묻어 있다는 걸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말엔 ‘미리부터 대통령 행세’ ‘언터처블 당수(黨首)’ ‘국회 지배자’ ‘알아서 충성맹세’ 같은 부정적 의미도 잔뜩 깔려 있다. 여의도 대통령이란 말 자체만으로 오만하게 비칠 수 있고, 향후 국회 활동에 대한 잘잘못도 다 떠맡아야 할 수도 있다. 다 잘해서 계속 지지 받으면 좋겠지만 자칫 공들여 이룬 유력한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이 시나브로 내리막길을 걸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여의도 대통령은 애초부터 이 대표의 DNA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가 지금 자리에 오른 과정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 대표는 소년공 출신으로 검정고시와 사시를 통해 기가 막힌 인생역전을 해냈다. 방식은 거칠지만 계곡 불법 음식점 정비와 선제적 코로나19 사태 대응 등 현장 행정가로서의 뛰어난 실행력도 확인시켰다. 또 비주류이자 중앙정치 경험이 일천함에도 야금야금 집권여당의 대선주자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검찰의 총공세 속에서도 당대표 자리를 거머쥐었고, 압도적인 총선 승리도 이뤄냈다.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쟁취해내는 인생을 살았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식으로 끊임없이 기득권에 도전해 지금 자리에 올랐다. 결코 가진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르거나, 남들에 군림해 지금의 성과와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게 아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가 여전히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라는 사실은 아직 그한테 긍정적 기대를 거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가진 이들이 갈수록 여의도 대통령의 모습만 덧칠하는 이 대표를 계속 응원할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요즘 그에게서 보이는 ‘제왕적 위상’에 실망했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당 회의에선 낯간지러운 ‘명비어천가’가 요란하고 국회에선 108석의 집권여당과 정부를 깡그리 무시하는 입법 독주가 뉴노멀이 됐다. 2특검 4국정조사와 같은 몰아치기식 공세도 그게 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인지 헷갈린다. 여기에다 차기 전당대회마저 ‘또대명(또 대표는 이재명)’ 및 ‘친명 최고위원 경연대회’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금 민주당이 보여주는 오만한 모습들 가운데 어떤 건 당대표와 직접 관련이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하지만 결국 국민은 당이 보여주는 전체 모습에 이 대표를 투영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 당내에서, 또 국회 안팎에서 보여주는 독선적이고 위압적인 정치가 이 대표한테 결코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설사 여의도 대통령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원하는 걸 다 관철시키고 정부·여당을 굴복시킨다고 한들 잘했다고 박수를 보낼 국민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그보다는 이 대표와 민주당에 “질렸다”며 돌아설 이들이 더 많지는 않을까. 이 대표와 민주당이 국민들한테 더 외면받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명한 정치를 하기 바란다. 독이 든 사과라는 걸 꼭 먹어봐야 아는 건 아닐 것이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