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자신의 뇌를 주치의에게 기증한 환자들

[여의춘추] 자신의 뇌를 주치의에게 기증한 환자들

정승훈 논설위원

입력 2024-07-02 00:39

예일대 쿠싱 센터의 단지들
삶이 끝나도 변하지 않는
환자의 믿음 보여주는 증거

의료진에게 매우 엄격했으나
환자에겐 한없이 친절했던
한 의사가 만들어낸 모습들

지금 우리의 환자와 의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 비칠까

미국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학교에는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대학 내 ‘쿠싱·휘트니 의학 도서관’ 건물 지하에 있는 ‘쿠싱 센터’가 그곳이다. 센터에서는 인간의 뇌와 관련된 질환, 치료법 등에 관한 사진과 문서, 병원 기록물 등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물 중에서 단번에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수백개의 투명한 단지다. 단지에는 병의 양상을 소상하게 기록한 라벨이 붙어 있는데 그 단지 안 보존액 속에는 인간의 뇌가 들어 있다. 각각의 단지에 든 뇌의 주름과 굴곡, 혹 등은 그 뇌의 소유자가 겪었던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실체다. 뇌에 생긴 다양한 종양과 뇌로부터 비롯된 이상 증상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환자들이 사후에 기꺼이 자신의 뇌를 주치의였던 한 의사에게 기증한 것이다. 근대 신경외과 의사들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하비 쿠싱(Harvey Cushing)이다. 이른바 ‘쿠싱 증후군’을 발견한 인물이기도 하다. 수많은 환자들은 왜 이 의사에게 자신의 뇌를 기증했을까.

쿠싱은 외과의사들 사이에서 추앙과 경외의 대상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려운 사람으로 통했다. 가족에게도 차가웠고 동료 의사와 수술실 스태프에게는 한없이 엄격했다. 그는 둘째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근무 중에 듣고도 예정됐던 수술을 모두 소화했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들에게는 좀 달랐다. 그는 흠모의 대상이었다. 환자들은 그를 배려와 자상함의 표본으로 여겼다. 매우 점잖고 친절했으며 동정심과 이해심이 충만한 의사라고 환자들은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쿠싱이 최고의 수술 실력을 갖춘 의사였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사였다는 점이다. 그는 결코 환자가 그냥 죽어 가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가능한 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도왔고, 직접 환자의 몸을 닦거나 환자의 변기를 처리하는 일도 있었다. 환자의 실혈사를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혈류 감소 방법을 연구·개발했고, 감염을 막기 위해 수술한 환자를 출입이 엄격히 관리되는 수술실 한켠에 둔 채 치료하기도 했다. 수술 중 환자의 사망을 막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개발했던 그의 수술법은 현재의 뇌수술에서도 기본으로 여겨진다. 수술 후 환자의 감염을 막으려 했던 그의 노력은 오늘날 많은 병원이 집중치료실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쿠싱의 헌신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환자가 다 회복하지는 못했고 환자들이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때도 그는 환자와 보호자 곁에 있었다. 사망한 어린이 환자의 부모를 만나게 됐을 때 그는 자기 아들의 죽음을 언급하며 슬픔을 나눴다. 가족과 동료들에게는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환자와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일부 환자는 그의 수술과 치료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데 대한 보답으로, 다른 환자들은 비록 회복하진 못했지만 치료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헌신에 대한 보답으로 사후에 자신들의 뇌를 기증했다. 그라면 연구를 통해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대학병원 의사들이 또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다고 한다. 한 대학병원 의사들은 환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휴진에 들어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다. 같이 휴진하는 의사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닐까. 환자의 곁을 떠난다는 게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의사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의사들의 휴진을 맞닥뜨리게 된 환자들은 거리로 나가 시위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학병원 교수들의 휴진이 처음 시작됐을 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교수들의 휴진이 장차 의사와 환자 및 시민 간의 신뢰 관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의견에 동의한다. 의사를 신뢰하면 환자는 모든 것을 내어준다. 치료를 받을 때는 물론 사후에도 마찬가지다. 쿠싱 센터에 있는 수백 개의 단지가 그것을 보여준다. 환자의 신뢰는 의사가 환자 곁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쌓인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간다는 식의 대중가요 가사처럼 환자들을 위해 곁을 떠난다는 의사의 말을 신뢰하는 환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승훈 논설위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