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아버지의 월급날

[살며 사랑하며] 아버지의 월급날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입력 2024-07-10 00:35

집 근처 상가에 치킨집이 입점했다. 판촉 행사를 알리는 화려한 현수막이 걸렸고 젊은 부모와 그들을 빼닮은 아이들이 줄지어 가게를 오갔다. 저녁놀과 한데 어울린 오붓한 풍경에 세월의 덤불에 묻혀 있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그날은 아버지의 월급날이었다. 퇴근한 아버지는 웃옷 안주머니에서 회황색 봉투를 꺼내 어머니에게 건넸다. 봉투 겉면 네모반듯한 칸에는 아버지의 이름, 근로일수와 금액이 복잡하게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돈뭉치를 한 손에 쥐고 능숙하게 지폐를 셌고 가계부를 펼쳐 한 달 치 살림을 다시 꾸렸다. 그런 어머니 곁에 바짝 붙어 앉은 나는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살아온 햇수를 세어 보자면 손가락 열 개를 다 접지도 못했으므로, 한 달 내리 쉬지 않고 일했던 가장의 노고를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아버지의 월급날은 맛있는 걸 먹는 특별한 날이라는 공식을 알아채고 들떠 있는 철부지였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대문 밖을 나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에는 주황빛 가로등만 듬성듬성 길을 비췄다. 슈퍼 앞을 지나치고 좁다란 도로를 건너 발길을 멈춘 곳은 밝게 빛나는 통닭집 앞이었다. 양념 통닭 한 마리를 주문하고 포장해 집으로 되돌아가기까지 자꾸 고이는 맑은 침을 몇 번이나 삼켰는지 모른다.

단란한 4인 가족이 머물던 집은 도로 확장을 이유로 허물어졌고 아버지의 크고 단단한 손을 잡고 걸었던 길목과 통닭집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동네는 오래전에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다정하여 애틋한 추억은 억겁의 세월이 흐른다 해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눈감고 그 길목을 수백 번 더 오갈 수 있으니 추억은 시간보다 힘이 세다. 치킨을 포장해 집에 가는 길, 아버지의 손을 맞잡은 듯 손바닥에 온기가 돌았다. 나는 그때로 돌아가 전하지 못한 말을 했다. “아빠가 월급날 사준 통닭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어요.”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